• Love is a commotion
  • 2024. 4. 6. 14:16
  • feel the same -  The Millennial Club

     

     

     


     

     

     

     서은오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은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공식처럼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그렇게 영원히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세상이 무너졌다.

     

     

     


     

     

     

     "요즘 운동 재미없어. 나도 그냥 너 따라 옆에 드러누울까 봐."

     

     

     

     고작 너 하나 없다고 널찍한 농구장이 얼마나 비어 보이던지. 이게 다 네가 덩칫값을 하지 못하고 칠칠맞게 부상이나 입고 병원에 실려와서 그런 것이 아니냐. 걱정을 꽁꽁 숨긴 잔소리를 수십 번째 반복하며 붕대가 둘둘 말린 환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렇게라도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꼴사납게 울어버리고 말 것 같아서. 서은오가 약기운에 깊은 잠에 들어버리면 그제야 힘 풀린 근육 새로 물줄기가 툭 떨어졌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들킬세라 거칠게 눈가를 벅벅 문지르고는 며칠 동안 그래왔듯 담당의에게 달려가 대체 언제 일어날 수 있냐 징징거렸다. 사실은 알고 있다. 이제 서은오는 예전처럼 제 옆에서 뛸 수 없다는걸. 하지만 부정이란 감정은 제 자유니까. 나는 언제나 운이 좋으니까 자신이 인정한 유일한 파트너인 서은오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잔인하게도 이변은 없었다. 

     

     

     


     

     

     

     "이번 경기의 MVP 배주한 선수! 최근 경기에서 연달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요. 급격하게 오른 실력이 담당 매니저 덕분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맞습니다! 저를 한시도 농땡이 치지 못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매니저 덕분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경기를 마지막으로 1부로 가는 것이 확정이 되셨는데. 앞으로의 목표 같은 것을 간단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조금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 목표는 국가대표가 되어 금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바로 옆에서 저를 지지해 주는 친구의 소원이기도 하고요."

     

     

     

     소원까지는 아니었나. 그렇지만 그만두지도 못하게 했으니 소원을 빈 것이나 마찬가지지 뭘. 쓸데없이 길어진 인터뷰에 혓바닥이 따끔거렸다. 아, 어제 사장님이 예민한 부위라 한동안 조심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나는 회복력이 좋으니까 상관없겠지? 앞에서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서은오의 모습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시무시한 매니저님. 저 너무 힘든데 인공호흡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제 손 보다 묘하게 더 큰 단단한 손을 잡고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 슬쩍 문을 잠갔다. 인터뷰 때문에 지체된 퇴장 시간에 텅 비어있을 거란 생각이 맞았다. 경기 준비 때문에 금욕 아닌 금욕을 한 탓인지 마음이 급해져 입술을 바투 붙이고 코로 숨을 쉬는 것도 잊어 작게 헐떡이며 혀를 섞었다. 아직 채 아물지 못한 혓바닥이 작게 아려왔지만 달큼한 타액에 금세 고통을 잊고 서로의 입술이 번들거릴 때까지 양껏 삼켰다. 의아한 듯 꿈틀거리는 서은오의 눈썹이 재밌었다.

     

     

     

     "... 뭐야?"

     

     

     

     "이번에 피어싱 한 거, 어때?"

     

     

     

     혀를 베, 내밀며 웃어 보이자 조금 전의 키스로 이마까지 벌게진 얼굴이 더 보기 좋게 변했다.

     

     

     


     

     

     

     고등학생으로 참가한 마지막 경기를 곱씹다 문득 이런 스킨십이 당연해진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저 친구로만 생각해 온 세월이 있는데 내가 서은오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줄이야. 물론 원인은 나였다. 하지만 이건 억울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그렇게 야해빠진 손길로 허벅지를 주물 거리 면 고자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자신과 똑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뭐, 덕분에 서로서로 좋은 게 좋은 사이가 됐으니 잘 된 건가. 운동만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귀찮게 여자친구를 사귈 필요도 없고. 물론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어 사귀어 본 적도 없지만. 그런 저와 달리 서은오는 종종 불려나가 고백을 받는 것 같기도 했는데. 봐라, 지금도.

     

     

     

     ...어?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서은오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린 창문 밖으로 어떤 여자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잠깐만. 저기로 가면 거긴데? 졸업식날 고백하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무성한 벚나무. 와 이거 황당하네? 나는 뒤지기 직전까지 좆뺑이를 치더니 지는 여자랑 하하 호호 저기를 가? 뒤졌다 너는.

     

     

     

     벌떡 일어난 탓에 요란한 소리를 내 이목이 집중된 것도 느끼지 못하고 헐레벌떡 뒤를 밟아 장소에 도착하니 작은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 아해."

     

     

     

     ".. 줘서 고맙..., 나한테는 따로 책임...... 있어서 .. 해."

     

     

     

      씨발, 뭐라는 거야? 저 여자랑 사고라도 쳤나 뭔 책임을 말하는 건데. 서은오 내 입술도 따먹더니 이거 완전 발랑 까진 놈이었네? 아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쟤가 어? 뭘 하든지 말든지. 와 아니 근데?

     

     

     

     모퉁이 뒤에서 그렇게 한동안 씩씩거리다 자리를 뜨려는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 움찔 놀라 교실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서은오 이 자식. 나한테 고해성사 안 하기만 해봐라. 어? 양반은 못되네. 딱 마주치는 거 봐. 하교는 걔랑 안 하려나 보지? 그래도 나랑 집 가려고 온 거 보면? 끝도 없는 물음표에 되려 머리가 점점 차분해져 아무 일 없던 척 시침을 뚝 떼고 하굣길에 올랐다. 언제 여자 친구 생겼다고 말하는지 내가 두고 본..

     

     

     

     "배주한."

     

     

     

     ".. 다. 어?. 왜, 어어."

     

     

     

     "내가 널 국대로 만들어주겠다는 거, 어릴 때 치기 어린 소리로 한거 아니야. 여전히 진심이야."

     

     

     

     상상도 못한 말에 벙쪄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서은오의 눈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시선을 휙 피하는 얼굴이 점점 발그레해지는 게 보여 그 열기가 자신에게 옮겨붙은 듯 순식간에 훅 달아오른 제 얼굴의 온도가 너무 높아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그럼, 그럼. 아까 그 책임이라는 게 그 이름도 모르는 여자애가 아니라 나, 날. 말한 거였나. 내가 무슨 오해를... 

     

     

     

     "... 그냥, 성인이 된 김에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었어."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알아?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네가 나 책임진다며."

     

     

     

     둘 다 빨개가지고는. 덩치도 별로 작지 않은 놈들이 이렇게 서서 한다는 말 하고는. 분명 웃겨야 하는데. 왜 이렇게 심장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미친 듯이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의 울림이 너무 커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울림을 타고 올라온 단어가 목구멍을 간질였다.

     

     

     

     "조, 좋아해."

     

     

     

     때마침 크게 불어온 바람에 머리 위의 벚나무가 흔들리며 벚꽃이 흩날렸다. 

     

     

     

     가장 한심한 고백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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